한국의 성곽문화에 대하여 업로드 CS
- ceden320
- 2020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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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곽문화에 대하여 업로드
한국의 성곽문화에 대하여
성곽유적은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 이래 끊임없이 이어진 외적(外敵)의 침략에 맞서 이 강토를 수호하려고 했던 호국의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우리 나라의 성곽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한국의 성곽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한국의성곽문화에대하
Ⅰ. 머리말
Ⅱ. 본론
1. 성곽의 출현
2. 성곽의 형식
1) 목책성(木柵城)
2) 토성(土城)
3) 석성(石城)
3. 성곽의 종류
1) 산성(山城)
2) 도성(都城)
3) 읍성(邑城)
4. 성곽의 구조물
1) 성벽(城壁)과 부대시설
2) 성문(城門)과 부대시설
Ⅲ. 맺음말문헌상의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 고조선의 도성인 왕검성(王儉城)(평양성)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때가 기원전 2세기경에 해당되며 이 당시에 이미 성곽을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후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삼국시대(三國時代)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많은 성곽을 축조하였는데 이미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 성곽의 우수한 구조 형식을 꽃피웠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가 들어서면 성곽을 축조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형성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성곽축조의 공통적인 목적이었다. 한국은 역사상 수많은 성곽 축조의 역사를 보이고 있는데, 외적에 대한 방어라는 가장 큰 목적은 물론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2. 성곽의 형식
성곽의 형식은 축성의 재료에 따라 목책성(木柵城), 토성(土城), 석성(石城)으로 분류된다.
1) 목책성(木柵城)
삼국의 성곽 시설로는 초기에는 대부분 간단한 목책(木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본격적인 석축(石築)에 의한 성곽은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서기 3세기 이후에 가능하였다. 『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부여(夫餘), 진한(辰韓),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등 삼국시대(三國時代) 초기에는 주로 목책성을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목책은 나무 기둥을 엮어 세워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만든 원시적인 울타리 성으로 내구성이 부족한 반면 단기간에 설치할 수 있는 좋은 방어 시설물로 후대에도 사용된 방법이었다. 특히 토성벽(土城壁)에 함께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2) 토성(土城)
목책성과 함께 흙으로 성벽을 조성하는 옛 형식으로 목책보다는 공력(工力)이 많이 소모되나 삼국시대는 물론 조선의 도성이던 한성도 처음에는 토성으로 축성하는 등 상당히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되었다.
산지 토성의 경우 기존의 지세를 잘 이용하였는데 특히 급경사지역은 기존 지형을 깎아 경사에 대비하는 삭토법(削土法)으로 성벽을 축조하고 완경사에는 주변의 흙을 쌓아 토단(土壇)을 만들어 둔덕을 조성하는 성토법(盛土法)을 이용하였다. 이 밖에 주요한 성벽에는 토성벽을 조성하기 위해서 한켜, 한켜씩 얇게 깔아 다져 올리는 판축법(版築法)이 적용되었다.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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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목 : 한국의 성곽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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