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일대기 개요1 보고서 XD
- ceden320
- 2020년 12월 12일
- 2분 분량
이상의 일대기 개요1 보고서
이상의 일대기 개요1
이상의 일대기 개요1
이상 일대기
1. 들어가며
그는 1910에 태어나 1937에 사망한 시인이자 소설가로 본명은 김혜경이다. 서울 출생으로 1929년 경성공고 건축과 졸업한 후,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 <▽의 유희> <공복> < 삼차각설계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한편 이해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양화 <자화상>을 출품, 입선됬었다.
2. 이상이라는 필명의 기원
1932년 역시 <조선과 건축>에 시 <건축 무한6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무렵 그는 백부의 알선으로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기수로, 또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전하며 근무하였다. 이상이란 이름은 기수 시절 인부들이 그를 가리켜 ‘리상’이라고 부른 데 연유한다지만 고공 졸업엘범에 그러한 별명이 나와 있다는 설도 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여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의 계승이니 혹은 그 정서적 바탕위에서 언어를 갈고 닦는 등 서정의 맛은 없었다.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그리고 관념적 한자언어로 구성된 극히 난해한 문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그러나 이 난해안 문학이야마로 그가 22세에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혔으며 지금도 일부의 추종자 또는 그 유사한 시도자들을 낳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알게 된 그는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 준 통인동 집을 처분,‘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1934년 난해의 극을 이루는 대표작 시<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 학예란에 연재, 항의와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식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잇단 사업의 실패(다방,카페 등)와 병고로 말미암아 그는 이미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었고,몸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아우 운경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셋방을 전전 방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3. 자전 소설 날개의 발표와 불우한 말년
1936년 <조광>에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날개>는 그의 첫사랑 금홍과 2년여에 걸친 무궤도한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으로 그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수 있는 <박재된 천재>의 번득임이 나타나 있다. <날개>를 발표할 무렵 같이 폐를 앓고 있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1936년 여름, 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돈암동 홍천사에서 결혼했으나 생활은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이해 암담한 생활과 자신에 대한 회오의 눈물을 남긴 채 도일,이듬해 토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백회하다 사상불온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나왔다.
자기 생활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 <종생기>1편을 남기고 그해 4월 17일 토쿄제대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작품으로는 <1933년 6월1일> <꽃나무> <이런 詩> <거울> <보통기념> <오감도> <지팽이> <소영위제> <정식> <산촌여정> <서망표도> <조춘점묘> <약수> <행복> <위독> <봉별기> <동해> <황소와 도깨비> <19세기식> 등을 남겼는데,시 . 소설. 수필. 평론 등을 합하여 모두 80여편이 전한다. 1957년 그의 전작품을 정리한 <이상전집> 전 3권이 간행되었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2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이상의 일대기 개요1
파일이름 : 이상의 일대기 개요1.hwp
키워드 : 이상,일대기,개요,이상의,개요1
자료No(pk) : 11035789
Komment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