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조사 자료등록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등록 BR
- ceden320
- 2020년 12월 17일
- 3분 분량
빈곤조사 자료등록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등록
빈곤조사 자료등록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빈곤조사]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빈곤조사]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목차
* 빈곤조사
Ⅰ.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Ⅱ.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 참고문헌
* 빈곤조사
리버풀의 선박회사 소유자인 찰스 부스(Charles Booth)가 런던시 빈민의 생활실
태를 자비로 실증적으로 조사하여 그 결과를 1889년 "런던 시민의 생활과 노동
(Life and Labour the People London)"이란 책으로 발표하였다. 1901년에는 요크시 소재 한 가족 회사의 젊은 실업가 씨봄 라운트리(Seebohm Rowntree)가 부스의 조사 결과에 큰 감명을 받아 역시 자기 부담으로 당시 전형적인 지방도시인 요크시의 빈민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여 "빈곤 : 도시생활의 연구(Poverty : A Study of Town Life)"란 책을 발간하였다.
이 두 조사는 사회복지의 역사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이들의 조사가 당시 빈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편견을 수정하는 데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 빈곤의 주된 원인이 노령, 질병, 실업, 낮
은 교육수준 등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가난은 가난한 이의 성격적 ? 도
덕적 결함의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던 시민들의 생각이 편견임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빈곤대책의 초점을 빈민의 정신상태보다는 그들을 둘러
만 사회적 환경에 두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행한 대규모 조사, 특히 찰스 부스의 사회조사는 현대 사회과학
적 조사방법론의 효시가 되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I.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부스는 회사 경영에 사용되는 새롭고 조직적인 통계학 기법을 응용하였으며,
조사비용을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 그가 조사에 사용한 총비용은 무려 33,000파
운드에 달했다. 그의 일을 도운 자원봉사보조원이 사촌 여동생 비어트리스 포터
(Beatrice Potter, 후에 Sidney Webb과 결혼한 비어트리스 웹)였다. 그는 조사연구를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시켰다.
본부는 토인비 홀에 설치했고, 깃발을 꽃아 조사대상 지역을 표시한 빈곤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또 교육청 관료들로부터 학생들의 결석사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본부팀은 정보를 수집 ? 검토하였다.
부스는 런던 시민을 8개 계급으로 분류하였다. A계급은 사회의 최하층민으로서 생계수단이 거의 없는 극빈층이고, B계급은 비정규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는 빈민들로서 그 중에는 부정직, 나태, 음주 등으로 가난해진 사람도 있다.
C계급은 계절적 또는 일시적인 정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음주와 무절제한 생활태도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D계급은 정규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자립심과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의식도 가지고 있다.
이상 A에서 D계급까지가 빈민인데(C와 D를 합해 22.3%) 다 합하면 그 비율이 무려 30.7%나 된다(Jones, 1991 : 60-61). 런던 시민의 3할이 빈민이란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가 빈곤의 주된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스의 저서는 초판이 삽시간에 매진될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오늘
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조사는 많은 한계가 있다. 우선 조사의 범위가 불분명
했다. 제1권은 동부 런던만을 조사했으며, 점차 대상을 확대하였지만 런던 전체
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했다. 또 빈곤선(Poverty line)에 관해 제안(정상 가정의 경우 주당 소득이 21실링 이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남)하였지만, 가족의 크기와 연령을 빠트렸다. 빈곤에 관한 정의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빈곤이 개인적 과실이 아니라 사회적 실패의 결과란 증거를 명확
히 제시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봉을 다소 수정하여 빈민을 위해 제한된
법위 내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부스가 비록 개념적 틀을 발전
시키는 능력은 부족했지만, 사회복지정책과 사회조사연구방법론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켰다. 그는 최초로 빈곤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누가 빈민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또 대규모 사회조사의 개척자였고, 초보적이었지만 사회계급을
범주화했으며, 사회적 대책의 최저기준을 암시했다(Jones, 1991 : 61-63).
한편 찰스 부스가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서라도 빈민에 대해 조사해야 하겠다
고 결심한 배경에 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스는 사회민주
연맹(the Social Democratic Federation, SDF) 노동자계급에 관한 조사가 빈곤의 확대를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여겨 스스로 빈곤에 대해 조사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
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SDF가 1883년 이전 어느 때, 런던에 사는 노동자
계급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노동인구의 25%가 가난하다는 것
이었다. 이에 대해 조사가 잘못되었고 빈곤이 과장되었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완
강한 보수주의자였던 부스도 노동인구의 SDF의 조사결과가 과장되었다고 확신
하여 자신의 힘으로 직접 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통설은 SDF의 주도자였던 하인드맨(Hyndman)의 자서전에 SDF의 전신인
민주연맹(the Democratic Federation)이 상기와 같은 조사를 실제로 한 적이 있으며, 또 찰스 부스라는 청년이 자신을 찾아와 SDF의 조사가 잘못되었고 조사대상을
런현 전 지역으로 확대하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며, 자기가 사비를 들여 런딘시
노동자들의 생활실태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을 남긴 데서 비
롯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루빈스타인(David Rubinstein)은 다른 견해를 제시하였다. 즉,
하인드맨이 자서전에서 밝힌 SDF의 빈곤조사는 사실은 실업에 관한 조사였으며,
런던 시민의 25%가 가난하다는 것은 실제로는 폴 몰 가제트(Pall Mall Gazette)지의 조사였다는 것이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빈곤조사 자료등록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파일이름 : [빈곤조사]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hwp
키워드 : 빈곤,찰스,부스,런던시,빈민,라운트리,요크시,빈곤조사,자료등록,부스의
자료No(pk) : 11025815
Comments